들어가며: 왜 '사라진 구'의 역사를 읽어야 하는가
지워진 이름
2015년 11월 4일, 상하이에서 "자베이구(闸北区)와 징안구(静安区)의 제도를 폐지하고 새로운 징안구를 세운다"는 업무 대회가 열렸다. 그 순간부터 '자베이구'는 행정 구역의 한 칸이 아니라 한 줄기 기억이 되었다.
흥미로운 점은, 행정 구역은 폐지할 수 있어도 지명은 좀처럼 사라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오늘날 상하이의 어느 오래된 병원, 오래된 학교, 오래된 파출소에 들어가도 문패와 인장, 옛 문서의 머리글에서 '자베이' 두 글자를 여전히 볼 수 있다. 버스 정류장 이름은 바뀌었지만 입에 붙은 말은 바뀌지 않았다 —— 나이 든 상하이 사람들은 여전히 "자베이에 간다"고 말하지, "옛 자베이에 간다"고는 말하지 않는다.
여기에 흥미로운 점이 있다. 공식적으로는 이미 말소된 이름이, 왜 민간에서는 아직 살아 있는가?
답은 아마 이 문장 속에 숨어 있을 것이다 —— 자베이는 하나의 '구'가 아니라, 너무나 짙게 농축된 근대사다.
28제곱킬로미터 안에 얼마나 많은 것이 담겼나
자베이가 폐지되기 전의 면적은 29.19제곱킬로미터(일설에는 29.26제곱킬로미터, 이 책에 대하여의 데이터 설명 참조)였고, 남북 길이가 약 10킬로미터로, 상하이 중심 도시 지역에서 작지 않은 땅이었다. 그러나 이곳의 '밀도'는 면적에 있지 않고 사건에 있다.
- 상하이의 육상 관문(옛 베이잔역, 상하이역)이 여기에 있다.
- 중국 근대 최대의 출판 기관인 상우인수관(商务印书馆)과, '아시아 제일의 도서관'이라 불렸던 그 동팡도서관(东方图书馆)이 여기에 있었고, 여기서 불탔다.
- 쑹자오런(宋教仁) —— 중국 헌정사에서 가장 유명한 피격자 —— 이 여기에 잠들어 있다.
- 1·28 사변의 쑹후항전에서 일본군의 첫 공격 목표가 바로 자베이였다. 8·13 사변의 회전에서는 셰진위안의 '팔백장사'가 자베이의 쓰항창고를 지켰다.
- 중국 공산당 3차 대회 이후의 중앙국 기관이 자베이의 어느 스쿠먼에서 1년 남짓 비밀리에 사무를 보았다.
- 상하이 최초의 민선 정부는 노동자 제3차 무장봉기가 자베이에서 승리한 뒤 세워졌다.
- 그리고 1927년 4월 13일, 바오산루에서 흘린 피는 이곳을 그 쿠데타의 가장 참혹한 한 페이지로 만들었다.
28제곱킬로미터에 중국 근대사의 교통, 출판, 헌정, 항전, 노동운동이라는 여러 굵은 줄기가 담겼다.
그래서 이 책이 말하려는 것
연대기는 흐르는 장부처럼 쓰이기 쉽다. 이 책은 그것을 되도록 피한다. 각 단계마다 '주된 질문' 하나만 붙잡고, 사건을 그 선에 꿰어 이야기한다.
| 단계 | 주된 질문 | 해당 장 |
|---|---|---|
| 1675—1843 | '두 수문 북쪽'이라는 모호한 방위어는 어떻게 생겨났는가? | 1, 2 |
| 1843—1911 | 조계가 한 걸음씩 조여 오는데, 화계는 어떻게 자구했는가? | 3 |
| 1912—1927 | 자베이는 왜 '화계 공장 발원의 대본영'이라 불렸는가? | 4 |
| 1927—1932 | 한 도시의 문맥은 몇 시간 만에 다 타 없어질 수 있는가? | 5 |
| 1932—1945 | 자베이는 어떻게 '화계 정예의 구역'에서 '적박구'가 되었는가? | 6 |
| 1945—1978 | 폐허 한 조각이 어떻게 다시 수만 호의 살림을 키워 냈는가? | 7 |
| 1978—2015 | 자베이는 왜 늘 '따라잡는' 처지였는가? | 8 |
| 2015 | 구 하나를 없앤 것은 실패인가, 또 다른 성취인가? | 9 |
이 표를 다 읽고 나면, 이 책의 야심이 대략 느껴질 것이다. 자베이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를 나열하는 것이 아니라, 자베이가 왜 그렇게 변했는지를 설명하는 것이다.
한 가지 당부
먼저 분명히 해 둘 것이 있다. 자베이의 근대사는 바탕색이 상당히 무겁다.
두 차례의 쑹후항전이 이곳을 '화계 정예의 구역'에서 한 조각 초토로 만들어 버렸고, 1937년 이후 건축물의 95% 이상이 폐허가 되었다. 자베이는 한때 '상하이에서 가장 가난한 지역 가운데 하나'였으며, '적박구'라든가 '하류지역'이라고 불렸다. 이것은 불쌍한 척하는 것이 아니라, 이후의 모든 일을 이해하기 위한 전제다 —— 자베이가 이후 수십 년간 '따라잡은' 것은 바로 이 빚을 갚은 것이었다.
그래서 이 책의 문장에는 기복이 있다. 이름과 상부를 말하고 바오산루의 서점과 극장을 말할 때는 밝고, 1932년 1월 29일 새벽을 말하고 바오산루의 비를 말하고 쓰항창고의 서쪽 벽을 말할 때는 무겁다. 이것은 저자의 감정이 아니라, 사료 자체의 무게다.
준비됐으면 시작하자. 첫 목적지는 쑤저우허 위의 두 수문이다.